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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후기의 이궁 경희궁펌 글 2012. 2. 29. 16:08
경희궁터 (사적 제271호)
경희궁은 조선 광해군 9년(1617)부터 12년(1620) 사이에 지어진 궁궐로
임금이 항상 머무르던 곳이 아니라 본궁을 떠나 잠시 머무르던 이궁이다.
경희궁의 처음 명칭은 경덕궁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덕과같은
발음이라 하여 1760년 (영조 36)경희궁으로 바뀌었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이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경희궁에 머물렀는데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서울역사박물관 후문으로 나오면 제일 먼저 숭정문이 나온다.
숭정문을 들어서면 조선왕조의 갖가지 공식적인 의례가 행해졌던 공간으로
품계석이 길 좌우 대칭으로 일렬로 세워져 있는 경희궁의 정전 숭정전 이 나온다.
숭정전
광해군 10년(1618)에 지어진 숭정전은 경희궁의 정전으로,
임금이 신하들의 조례를 받고 공식적인 행사를 하던 곳이다.
그러나 1910년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어 1926년 조계사로
옮겨 세워졌다가 현재는 동국대학교 안의 정각원이라는 법당으로 쓰이고 있다.
숭정전 임금의 어좌
현 위치의 숭정전은 복원된 것이며 1985년부터 5차례의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하여 6년에 걸쳐 복원했다.
경희궁 숭정전은 창경궁 명정전과 함께 조선중기 궁궐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숭정전에서 바라 본 숭정문
자정전
경희궁의 편전 1617 ~ 20년(광해군 9~12) 사이에 건립되었다.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숙종이 승하 하였을 때는 빈전으로 사용하였으며 선왕들의
어진이나 위폐를 임시로 보관하기도 했다.
일제가 헐어내었던 것을 서울시에서 발굴하여 확인한 자리에
(서궐도안)에 따라 현재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자정전 뒷뜰의 모습
자정전 문 창살의 모습을 담았다.
태령전 뒤에서 바라보니 서울시 교육청 건물이 보인다.
서암(瑞巖)
태령전 뒤에 있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 암천(巖泉)으로 불리는 바위속의 샘이 있어 예로부터 경희궁의 명물이었다.
본래는 왕암(王巖)으로 불리었는데 그 이름으로 인하여 광해군이 이 지역에 경희궁을 지었다는 속설이 있다.
1708년(숙종34)에 이름을 서암으로 고치고 숙종이 직접 瑞巖 두 글자를 크게 써서 새겨 두게 하였다.
그러나 현재 서암을 새겨두었던 사방석은 전해지지 않는다.
태령전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곳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는 않았던 건물이었다.
그러나 영조의 어진이 그려지자 1744년(영조20)에 이곳을 중수하여 보관하였다.
일제에 의해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지만 2000년 복원하였다.
현판은 석봉 한호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태령전에 있는 영조의 어진
태령전에서 바라 본 대문방향
경희궁 뒤에 있는 공원에서 바라 본 모습
숭정문 들어가는 오른쪽에 있는 오래된 나무가 세월을 말해 주는 듯 하다.
흥화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자리잡은 서울시립미술관
해방후에 서울고등학교가 위치하였다.
1980년 서울고등학교가 서초구로 이전한 이후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다시 건물을 허물고 경희궁의 일부를 복원하였다.
서울고등학교의 별칭과 경희대학교 명칭등이 여기서 유래하였다.
흥화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9호)
경희궁의 정문 원래는 구세군회관 빌딩 자리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제가 1932년 홍화문을 이토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떼어갔던 것을 1988년 경희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현재의 위치에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금천교
경희궁의 홍화문과 경희궁내의 여러 전각들 사이에 흐르던 금천에 놓여진 돌다리
난간의 돌짐승들이나 홍예사이에 새겨진 도깨비 상은 대궐 바깥의 나쁜
기운이 궐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상징성을 띠는 것이다.
1619년(광해군11)에 건립되었던 것을 일제가 매몰 시켰지만 2001년에 복원하였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때 수난을 당하여 1910년 일본인 학교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궁궐 건물이 헐려 나갔고 그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어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1901년 덕수궁과 구름다리로 연결된 대한제국의 궁궐로 사용됐던 경희궁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숭정전은 지금의
동국대 정각원으로, 흥정당을 광운사로, 황학전은 사직단 뒤로, 흥화문은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 정문으로 옮겨졌다.
5대(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궁궐이지만 제일 보존이 안된 궁궐이 경희궁이며
가장 찾지 않는 궁궐이면서 한적한 곳에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많은 궁궐이다.
출처 : A Bird Of Paradise글쓴이 : 극락조 원글보기메모 :'펌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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