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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주시 구고서원(九皐書院)상절사(象節祠)펌 글 2012. 2. 28. 15:28
구고서원 상절사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 새내
구계수와 죽계수가 마을을 좌우로 휘감고 달성서씨 500년 세거지 새내에 들어선
구고서원은 1780년(정조 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서한정(徐翰廷)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단산면 사천리에서 안내판을 보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아무리 찾아도 구고서원을 찾을 수 없었다.
백산서원 건물들이 너무 많아서 시야를 가리고 있으니 보이지가 않아서 백산서원이 구고서원인줄
알고 담고 내려와서 아무래도 미심쩍어 다시 마을 분에게 물으니 백산서원 뒤로 돌아가라 한다.
다시 백산서원 뒤로 돌아가니 아주 조그만 담도 무너진 구고서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구고서원 외삼문
조선전기의 학자인 서한정(徐翰廷, 1407(태종 5)~1490(성종 21)은 호(號) 돈암(遯菴)),
본관(本貫) 달성(達城), 진사 균(均)의 아들이며 달성에서 살았다.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 단종이 손위(遜位)하자
벼슬 할것을 단념하고 가족과 함께 소백산으로 들어가 은둔생활로 일생을 마쳤다.
"세상이 지금과 같아서는 말을 하고 싶지 않구나. 어느 곳에 내 몸 숨길 별 천지가 있겠는가?"
많은 선비들이 영리를 부여하지 않은 그의 절개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였다.
세조의 즉위 무렵 서한정은 증조 대부터 살기 시작하던 대구에서 영천의
산이리(山伊里)로 옮겨왔고 , 만년에는 순흥지역 남쪽 아래, 궐봉(蕨峰)의 동쪽에 있는 마을인
풍기의 등강촌(登岡村)으로 옮겨왔다. 단종이 보위에 있을 당시 비록 진사에 불과했지만,
세조 즉위 이후 이곳으로 옮겨와 벼슬을 접고 은둔의 삶을 살다가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분묘는 영천의 산이리 지역이다.
저서로는 간송당문집(澗松堂文集) 추암선생유집(庵先生遺集) 목판본 2권이 유집이다.
권득평(權得平)은 그에게 준 시에서 노중연(魯仲蓮)과 백이숙제(佰夷叔齊)에 비겨 그의 고절(高節)을
찬양하였다. 이 문집은 1814년(순조 14) 10세손 홍윤(弘胤) 등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시(詩)의 「신거이수(新居二首)」는 단종이 손위하고 세조가 즉위하자 은둔의 뜻을 품고
순흥 등강촌(登岡村)으로 이사한 뒤 혼란한 시사(時事)를 한탄하며
자신의 괴로운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그의 소지(素志)를 밝힌 시이다.
구고서원 내삼문
선현의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0년(고종 7)에 훼철되어 지금까지 복원하지 못하였다.
당시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인 상절사(象節祠), 강당인 존교당(尊敎堂) 및
동재(東齋)·서재(西齋)·주소(廚所) 등이 있었다.
현재는 사당 앞에 서원 서당 동서재 현판이 한 건물에 걸려있다.
출처 : A Bird Of Paradise글쓴이 : 극락조 원글보기메모 :'펌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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