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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주시 백산서원(白山書院)펌 글 2012. 2. 28. 15:28
백산서원
영주시 단산면 사천1리
백산서원은 새내마을 안쪽에 있는 서원으로, 일제에 항거하여 분기한 충의공(忠義公)
죽림(竹林) 서재승(徐在承)의 붉은 충절을 추모하여서 건립한 서원이다.
동인문(東仁門)
백산서원은 지방유림과 달성서씨 문중의 발의로 1951년에 사림이 건의 하여서
창의사(彰義祠)로 건립되었으며, 1971년에 백산서원으로 승격하고 1980년에
사림도회(士林都會)에서 충의(忠義)의 사시(私諡)를 받았다.
봉안문(奉安文) 상향문(常享文)은 김황(金榥)이 지었다.
명사루(明沙樓)
이 서원에는 을사조약(1905)이 체결되자 의병활동에 투신하여 순절한
충의공(忠義公) 서재승(徐在承, 1876~1915)의 위폐를 봉안하고 있으며,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성서(聖瑞), 호는 죽림(竹林)으로 경상북도 일원에서 활약한 항일 의병장이다.
창의정(彰義亭)
1876년(고종 13) 11월 25일 경상북도 영주(榮州)에서 태어났다. 탁지부(度支部)
주사(主事)로 재임하던 1905년 11월에 일제가 강제로 을사조약(乙巳條約)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이에 격분해 관직을 사임하였다.
월영당(月瀛堂)
이후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의병 투쟁에 몸담아 군량 수합에 힘쓰는 한편,
1909년에는 스스로 의병을 일으켜 여러 해 동안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그러다 전세가 불리해져 영주군(지금의 영주시)으로 피신해 있던 중
1915년 친일 앞잡이의 밀고로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었다. 이어 서울로 압송 도중
모진 고문을 받다가 같은 해 7월 22일 지금의 풍기(豊基)에서 총살당하였다.
송평정(松坪亭)
서장각(書藏閣)
1만 5천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신도비가 있다.
1980년 8월 15일의 광복절을 기하여 건국포장을 받았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학구재(學求齋)
서원 뒷뜰에 있는 재실 경신문
매년 음력 2월과 8월 하정일(下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삼안재(三安齋)
삼안재에서 안쪽을 바라본 모습
전사청과 제기고가 있다.
정전재와 관리실
멀리서 바라본 백산서원 남천문
경내의 감모문(感慕門)을 들어가면 명사루, 창의정, 동재, 월영당, 학구재, 서장각, 서재 중앙에는 강당이 있고,
동쪽 옆으로 송평정, 대암정사, 전사청, 제기고, 및 정전재와 주사 충의고택(忠義古宅:12동 99간) 등이
즐비하고 총 건평이 378평이며 원재는 논, 밭, 임야 등의 총면적이 8만 5천평이다.
동인문 맞은편에 있는 건물들은 아름다운 한국전통의 목재건물로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들의 99칸의 주거공간이라고 하여 담아 보았다.
임금보다 큰 집을 지을 수 없어 100칸보다 적은 99칸을 지은것 같다.
99칸의 집을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재력과 권세의 신분이었으리라....
안쪽에서 대문채를 바라본 모습
죽림정사
충효고택
입구에서 바라본 건물의 형태이다.
저기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서도 건물이 많다.
선의장을 안에서 바라본 대문채의 모습
선의장
사랑채, 안채, 사당을 기본으로 대문채, 행랑채 화장실 등
부속건물을 두루 갖춘 대규모 가옥이었다.
맨 아래에 있는 건물은 문이 잠겨있었는데 그곳도 백산서원이라고 한다.
백석서원은 지금 공사중이라 무척이나 분주했다.
서원의 주변에는 나무가 울창하고 많은 땅과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백산서원의 모습이다.
출처 : A Bird Of Paradise글쓴이 : 극락조 원글보기메모 :'펌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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