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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영광 묘장서원(靈光 畝長影堂)
    펌 글 2012. 2. 28. 15:27

     

    영광 묘장서원(靈光 畝長影堂,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9호)

    전라남도 묘량면 운당리 영당마을

     

     

    영당마을은 전주이씨 500년 집성촌으로 주민들이 개국공신 후손들이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조카인 양도공 이천우 후손들로 영정을 봉안한

    영당사 이름을 따 마을도 영당마을이 되었다 한다.

     

     

    묘장서원 홍살문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묘장영당 유적보존회

     

     

    묘장서원 외삼문 정의문(正義門)

     

    영당마을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묘장서원 또는 영당사라고도 한다.

    조선 초의 개국공신인 양도공 이천우( 1354∼1417)의 덕을 사모하고 태종이 하사한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설립된 사당으로, 1616년에 건립되었다.


     

    헌성비(獻誠碑)

     

    이천우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형인 이원계의 둘째 아들로서, 여말선초의 격동기에

    이성계의 휘하에 들어가 황산대첩 등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조선 개국을 도왔으며,

    두 차례의 왕자의 난에서 공을 세우고 태종의 즉위를 위해서도 많은 공헌을 하여

    정사공신과 좌명공신에 훈록되었던 인물이다.

     

     

    묘장서원 묘정비

     

     

    묘장서원 강당

     

    태종은 1416년 이천우가 퇴직할 때 그 공적을 치하하여 화공으로 하여금 이천우의 화상()과

     이응도()를 그리게 했는데 그것이 후에 묘장영당을 건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후손들이 대대로 영정을 보관하다가 이천우의 증손인 부사맹 이효상()이 담양으로부터

    영광 묘량면 영양리 당산마을로 이주·정착하면서 부조묘()를 건립하고 영정과 함께

    유품(포총교지, 이응도, 공신회맹축 등)을 보존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1616년(광해군 8) 향내 유림과

     함께 뜻을 모아 현 소재지에 영당()을 세우고 영정을 이안하여 배향하였다는

     기록이 1747년 간행된 <영당사기>에 전해진다.

     

     

    지경실(持敬室)

     

     

    양덕실(養德室)

     

     

    사당 내삼문 계명문(啓明門)

     

     

    현재 묘정영당은 사당(사우), 강당, 외삼문(문간채), 내삼문, 고직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약간 경사진 지형을 2단으로 정지하여 첫째 단에 5칸 외삼문과 강당을,

     둘째 단에는 내삼문과 사당을 배치하였다.

     

     

    사당 영당사(影堂祠)

     

    사당은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집으로 영당사(影堂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영당사 내부에는 태조 이성계 조카인 양도공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양도공 이천우는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이 영정은 조선 태종이 하사한 것이라고 한다.

    1416년(태종 16)에 치사(致仕)했을 때 태종이 많은 전답과 노비를

    하사 하려고 했으나 이를 사양하므로 영정을 내렸다 한다.

    이곳에 있는 영정은 1936년 취봉(翠峰) 이종원(李種元)이 모사 했다는 이천우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이 영정은 가로 103cm, 세로 160cm의 규모로 사모(紗帽)와 금대(金帶)로 정장하고

    두 손을 소매에 넣고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공신 초상에 속한다.

     

     

    묘장영당 사자기(祠字記)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사우는 철거되었고,

    강당은 그대로 남아 서당으로서의 기능을 했으며 1919년에는 강당에 사립영신학교를

    설립하여 4년 과정의 학교를 운영하였다. 그 후 1928년 후학과 향내 유림들이

    사우 복원을 추진하였고, 1934년에 이르러 옛터에 사우를 중건하였다.

    묘장서원에는 이천우 외에도 사우 중건 후에 추배한 이응종, 이황종, 이홍종,

    이복원전주이씨 명현 5위가 모셔져 있다. 

     

     

    사당 우측에 태종대왕이 내리신 포총교지를 새긴 비석이 있다.

     

     

    이천우는 태조 이성계의 서형(庶兄)인 이원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369년(공민왕 18) 동녕부(東寧府)의 수령으로 있다가 이성계 막하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조선건국에 공헌하여 개국공신에 오르게 된다.

    특히 1398년과 1400년(정종 2)에 거듭된 왕자의 난에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또 다시 공신에 책정되었다. 그는 태종 때에 찬성사에 이르렀으며, 태조 묘정에 배향되었다.

     

     

    서원 앞에서 바라 본 들판의 모습이 무척이나 풍요롭다.

     

     

    영당마을에서 나가면서 담은 모습이다.

     

     

    영당마을은 묘량면의 중서부에 있는 마을로 나지막한 야산을 등지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 평야가 펼쳐져 있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로 한옥보존마을이라고 한다.

     

     

    조선초기 이천우의 종손인 이효상은 성종(1469~1494) 때 영당마을과 이웃한 당산마을에

    정착한 후 일부가 1600년께 영당마을로 분가해 집성촌을 이뤘다.

    이효상이 이곳에 정착한 이래 500년간 20대 손이 이어져 오고 있다.

     


     

     

    출처 : A Bird Of Paradise
    글쓴이 : 극락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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