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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부여 부산서원 [浮山書院]
    내가쓴 글 2012. 2. 28. 15:30

     

    부산서원(浮山書院)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에 있는 서원.

    조선 중기의 문신 이경여(李敬輿, 1585~1657년)를 배향하고 있다.

     

     

    서원 입구의 홍살문

     

     

    아슬아슬한 층계다리를 한참  올라가서야 나타나는 소슬삼문

     

     

    이경여가 낙향한 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건립하였으며,

    송시열 등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오늘날에 복설되었다.

     

     

    이경여는 본관이 전주이고 자 직부(直夫), 호 백강(白江)이다.

    선조 때 사마시, 광해군 때 문과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의 폭정을 피하여 낙향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관직에 올라 대사성, 형조판서, 우의정 등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백강집》이 있다.

     

     

    문은 굳게 닫혀있고 담밖을 서성이다 안을 들여다 보니 사당건물 하나만 있다.

    담밖에는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백강 이경여 선생의 비가 아닐까 생각된다. 

    서원 입구에는  커다란 오래된 참나무가 좌우에 서 있는 모습이다.

     

     

    서원에서 내려와 보니 왼쪽으로 허름한 건물이 하나 있는데

    서원과 상관있는 건물 같기도 한데 아무리 살펴도 어떤 용도의 건물인지 알수가 없다.

     

     

    부산서원 표지석과 하마비는 길과 가까운  이곳에 세워져

    있는걸 보니 서원이 굉장히  넓었을거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왼쪽으로 조금 걸음을 옮겨보니 부여 동매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부여 동매(冬梅,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2호)

    동매는 백강(白江) 이경여 선생이 명나라에 수신사(修信使)로 갔다 올 때 가져다

    심은 것이라 한다. 처음에는 3그루였으나 2그루는 고목이 되어 죽었고, 한그루마저도

    일제말기에 타죽었으나 그 후 죽은 나무 뿌리에서 싹이 나 자란 것이 현재의 동매이다.

    본 동매의 수령은 약 40년 되었고, 밑 둥치의 둘레가 약 50cm이고, 높이는 5m이다.

    지금도 겨울이 되면 만물이 소생하는 봄울 재촉하듯 피어 그 은은한 향을 풍기고 있다.

     

     

    부산서원은 부여 읍내를 지나 백제대교를 건너 규암면 진변리에 있는

     양어장을 지나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야 찾을 수 있다.

    부산서원 앞에서 바라보면 백마강이 바라다 보이며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떠내려 온 산 「浮山」전설

    부여 부산은 오산, 일산과 함께 백제시대 신인이 살고 있던 세개의 산중에 하나이다.

    이 산에 관한 전설은 여러가지이지만, 하나는 이 산은 원래는 청주에 있던 것으로

    어느날 큰 홍수에 의해 떠내려 왔다는 전설이다.

     

     

    멀리서 바라본 저기 둥근산이 부산의 모습이다.

    그 때 어떤 여인이 그 모습을 보고 「산이 떠내려 온다」라고 큰 소리로 외쳐,

    산이 그 자리에 멈추어 버렸다라고 한다. 또 그 외에도 청주의 촌장이 자신의 토지라고 하여

    매년 산세를 징수했는데, 부여군수의 아들이 지혜를 짜내 세를 면제받게 되었다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부산은 강변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의 지대가 낮아, 장마 때에는 산의 주변이 자주 침수된다.

    그 때 물에 잠긴 이 산을 멀리서 보면 마치 둥근산이 물에 떠내려 오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떠내려 온 산」이라는 전설이 생겨난것 같다.

    자연이 만들어낸 불가사의한 현상을 바탕으로 생겨난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재는 금강변의 여기저기에 댐이 생기고, 부산 주변에도 안전한 제방이 축조되어,

    장마 때에도 그러한 현상은 좀처럼 볼 수 없게 되었다.

     

     

    저기 왼쪽 끝 아래쪽에 지붕만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부여 대재각 인 듯하다.

    부여 대재각은 1700년(숙종 26)에 지어진 정자로 부산 각서석을 보존하기 위해 세웠다.

    부산 각서석(浮山刻書石,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7호)을 보려고 했으나 찾지 못했다

    각서석은 백마강가 암벽에 새긴 글씨로, 백강 이경여가  조선 효종 8년 (1657)에게 올린 상소에 대해

    효종이 답한 글귀중에서 우암 송시열이 '지통재심(至痛在心)' '일모도원(日暮途遠)' 8자를 써서

    이경여의 아들에게 전한것을 1700년 (숙종 26)에 손자 이명이 바위에 새긴것이다.

    이를 보존하기 위해 정자를 짓고 상서(尙書)의 대재왕언(大哉王言)에서 이름을 따 대재각이라 하였다.

    정자 안에는 대재각중수기와 운한대기 등 2기의 기문이 걸려있다.

     

     

     

     

     

     

     

     

     

     

     

    출처 : A Bird Of Paradise
    글쓴이 : 극락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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