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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문형개(文亨凱)유허비,장흥댐변에서 제막식 -장흥신문에서
    펌 글 2012. 1. 26. 21:15

    문위세 3남, 임란 때 의병 참가, 큰 전공세워
    명량해전 노적봉 전설의 주인공-군자감 직장 제수

    임진란을 맞아 장흥에서 많은 의인들이 창의(倡義)하고 국난 극복에 앞장 섰다.

    그 중 잘 알려진 장흥의 의병장은 풍암(楓庵) 문위세(文緯世.1534∼1600). 풍암공은 특히 당시 장흥지역에서 의병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자신이 속한 남평문씨 일문의 참여를 적극 이끌어 냈으며 그의 아들 문원개, 문영개, 문형개, 문홍개 등 4형제를 비롯 조카 문희개, 사위 백민수 그리고 종손 문익명과 문익화 등이 의병에 참여케 했고, 숱한 전공을 세우며 장흥인으로서 명예를 빛냈다. 풍암공의 3남인 문형개(仁峰 亨凱)도 당시 장흥 의병의 주역의 한 사람으로 부친 풍암공을 도와, 많은 공을 세워 군자감 직장(軍資監 直長)에 제수되기도 했다.

    그 장흥의 의인 ‘인봉 문형개’의 유허비가 그 후손 및 문씨 종인들에 의해 장흥댐 도로변에 건립되어 지난 8월 27일 오전 10시에 제막식을 가졌다. 이날 제막식에는 남평문씨 종인과 유림인사 그리고 유선호 의원, 이명흠 군수, 이태균 향교전교, 변종주유림회장, 박종화 이병량군의원, 박형상 윤수옥 김기홍, 그리고 문씨 종인과 유림계 인사 1백여 명이 참석했다.

    인봉공은 유치면 오복리 사미동으로 분가하여 살았고, 공의 나이 25세 때 임진왜란을 맞아
    나 전국토가 왜적의 발길에 짓밟히고 있을 때 부친의 명을 받아 공을 비롯한 4형제와 함께 강진, 해남, 영암 등지로 격문을 돌리면서 의병 200여명을 모집하고, 집안 노복100여명과 함께 임계영 의병장의 휘하에서 의병으로 활동하며, 부친 풍안공, 4형제와 같이 크게 공훈을 쌓았다. 인봉공은 풍암공 휘하에서 형제들과 같이 식량을 모곡하여 부대에 보급하면서 부친의 작전계획을 도와 장수, 무주, 금산상의 왜적들을 격파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풍암공은 거창, 함안에 주둔하면서는 개령, 성주의 왜적을 크게 불리쳤고, 순천 의애교 전투와 양치의 전투에서 석진으로 대승하였으며, 행주대첩에서는 권율 장군휘하에서 호남 군령사가 되었고, 그의 사형제도 함께 참전하여 승전하였고 그 공으로 부친 풍암공은 전북 현령을 제수 받았다.

    인봉공은 정유재란 때는 부친을 도와 고을 의병을 규합, 형제들과 용담성을 사수하면서 공께서는 기병을 유격전으로 이끌어 무주, 진안, 장수 인근의 적들을 격퇴시키는데 항시 사졸들의 선두에서 많은 적을 참획하고 격퇴시켰으며, 해남 명량해전에서는 위장전술로 명량의 양도 큰 바위를 풀과 볏짚으로 덮어서 노적을 만들어 적들이 스스로 도망하게 하여 충무공 이순신이 크게 찬탄하였으며, 이순신을 도와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공을 세워 형제들과 같이 宣武原 從勳錄에 올라 군자감 직장을 지낸 후 고향에 돌아와 인재교육에 힘썼다.

    출처 : 재경장흥군향우회
    글쓴이 : 김용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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