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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양시 고려의 마지막왕 공양왕릉(高麗 恭讓王陵)살아있는역사 2013. 3. 1. 16:28
고양시 고려 공양왕릉(사적 제191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65-1, 산65-6
고려 공양왕릉 안내문
식사동의 유래와 비운의 왕 공양왕의 최후 모습이 설명되어 있다.
요즘 SBS '대풍수'라는 수목드라마에 등장하는 고려(高麗)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 1345~1394, 재위 1389~1392)과 그의 부인 순비(順妃) 노씨의 능이다.
공양왕은 재위 4년만에 고려가 망하면서 폐위되어 원주(原州)에 추방되어
공양군으로 봉하여졌고 삼척(三陟)에 옮겨져 그곳에서 태조 3년 춘추(春秋) 5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 뒤 태종(太宗) 16년(1416) 공양왕으로 추봉(追封)되어 봉릉(封陵)이라 하였다.
고려 공양왕릉(高麗 恭讓王陵)
공양왕릉은 강원도 삼척시와 경기도 고양시 두곳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문헌이 기록이 부족하여 어느쪽이 왕릉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삼척시 왕릉에 대한 기록은
현종 3년(1662) 삼척부사 허목의 〈척주지〉와 철종 6년(1855) 김구혁의 〈척주선생안〉이 있다.
삼척시 근덕면 능은 처음 묻힌 곳이고, 고양시의 능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능은 왕과 왕비의 쌍릉 형식이며 능앞의 석물은 초라할 정도로 간소한데 비석 1좌씩과
석상(石床)이 놓였고, 장명등(長明燈)이 1좌, 양쪽에 석인이 2쌍, 석호(石虎) 1필이 있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이 있는데 석호의 모습이 강아지 모습이다
비석은 봉릉 당초의 것으로 보이며, 왕릉 중간에 조선시대 고종(高宗) 때 세운 것으로 보이는
고려공양왕고릉(高麗恭讓王高陵)이라는 글씨가 있는 비가 서 있다.
신진(申津) 묘
공양왕릉 뒤에는 이천 신씨(利川申氏)의 시조 신진의 묘가 있다.
이천 신씨는 조선 중기 이후 사라진 성씨로 알려져 있으며 신진은 고려 후기에 정3품
상서(尙書)를 지냈다. 공양왕의 조모가 신진의 손녀인데 공양왕은 조모를 기려
조모의 고향인 영창현(永昌縣:현재의 이천)을 남천군(南川郡)으로 승격시켰다.
충숙왕의 비로 충혜왕과 공민왕의 생모인 명덕태후(明德太后)의 고모부이기도 하다.
신진(申津)의 묘 앞쪽에는 양쪽으로 석등과 석인이 한쌍씩 세워져 있다.
좌측으로는 신진의 3남 중 장남인 신홍점 묘가 있고
우측으로는 신홍점의 막내 동생인 신홍지의 묘가 있다.
이천 신씨의 시조 신진(申津)의 묘 뒷쪽으로 연일정씨 정자양(鄭自洋) 묘가 자리하고 있다.
정자양(鄭自洋)묘
정자양은 태종 15년(1415)~성종 23년(1492) 본관은 영일, 병조판서 정연(鄭淵)의
둘째아들이고 전주부윤 정자제(鄭自濟)의 형이며 안평대군의 처남이다.
정자양의 장남이 정부(鄭溥)이고, 정부의 사위가 신형이며 신형의 아들이 신광한이다.
정자양의 묘가 이곳 묘역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신광한의 외증조부이기 때문이다.
공양왕릉 맨 위에는 신형(申泂)의 아들 신광한묘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중기의 문신 신광한(申光漢) 묘
신광한은 성종 15년(1484)~명종 10년(1555), 자는 한지(漢之). 신시회(申時晦),
호는 낙봉(駱峰). 기재(企齋).석선재(石仙齋). 청성동주(靑城洞主), 시호는 문간(文簡),
증조는 집현전대제학 신장(申檣). 조부는 영의정 신숙주(申叔舟), 아버지는 내자시정 신형이다.
대제학 신광한 신도비
고려의 32대 왕(재위:1374~1388) 우왕(禑王)의 아명은 모니노(牟尼奴) 신돈의 시녀 반야(般若)의 소생으로
공민왕이 신돈의 집에 미행하여 낳은 아들이라 하여 1371년(공민왕 20) 신돈이 복주된 후
궁중에 들어가 태후궁(명덕태후)의 거소에 있다가 1373년 우(禑)라는 부름을 받고 강녕부원대군에 봉해졌다.
뒤에 태후의 명에 의해 궁인 한씨의 소생으로 발표되어 명덕태후의 훈계를 받아 국사를 잘 처리했다.
1380년 명덕태후가 사망하자 방종하기 시작하여 사냥과 음주 가무로 소일하며,
이성계 등이 위화도에서 회군함으로써 구세력은 몰락하고 이성계에 의해 폐위 강화에 유배되고
여흥을 거쳐 강릉에 이배되었다가 공양왕이 보낸 서균형(徐均衡)에게 살해되었다.
고려 33대 왕 창왕(昌王, 재위:1388~1389)은 부왕인 우왕이 강화로 추방되자
조민수(趙敏修)와 이색(李穡)의 추천으로 즉위했는데 그 때 나이 9세였다.
이성계 정도전 등은 우왕은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 신돈의 아들이고 창왕이 왕씨가 아니고
신씨라고 주장하여 폐가입진(廢假立眞)이라 해 재위 1년 만에 이성계 등에 의하여
폐위 당했다가 1389년 12월 우왕과 모의해 이성계를 암살하려 했다는 사건이
발각되어 강화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유순에게 살해되었다.
1389년 이성계 심덕부 등에 의해 창왕이 폐위되자 왕위에 오른 고려 34대
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 고려의 제 20대 국왕인 신종(神宗)의 둘째 아들 양양공의
6대손이며 정원부원군(定原府院君) 왕균과 충렬왕의 서장자 강양공 자(滋)의
손녀 국대비 왕씨(國大妃 王氏)의 차남으로 휘는 요(瑤)이며 공양군으로 불렸다가
조선 태종이 그를 왕으로 추봉하면서 공양왕( 恭讓王) 시호를 올렸다.
정몽주 등의 고려의 충신들은 국왕을 보필하며 고려를 재건하려 필사의 노력을 하였으나 이성계의
5남인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에게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살해되자 조정은 와해되었다.
1392년(공양왕 4) 이성계와 이방원, 정도전 등은 공양왕을 폐하고 새 왕조의 태조가 되었다.
고려는 475년 만에 망하고 이듬해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정하고 1394년(태조 3)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다.
고려 공양왕과 삽살개 전설이 담긴 연못 안내글
슬픔을 안고 있는 왕과 왕비가 빠져서 돌아가신 연못이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깊지는 않았다.
공양왕릉 삽살개 전설이 담긴 연못 앞에서 바라본 앞산의 모습이다.
능역에서 내려와 우측으로 100m쯤 되는 곳에 세종임금의 14번째 아들
수춘군 이현(壽春君 李玹)의 묘를 찾아 갔는데 철대문 안에
멀리 있어서 밖에서 바라보기만 하였다.
고양시에는 왕릉과 왕자의 묘가 유난히 많은것 같다.
수춘군은 세종대왕과 문혜대빈민정청주양씨 사이에 서기1431년(세종 13년)에
탄생, 휘는 현(玹)이고 시호는 안도(安悼)이며, 1455년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문혜대빈민정청주양씨(文惠大嬪愍貞淸州楊氏)는 남평형감 양경(楊景)의
딸로 세종대왕 후궁으로 간택되어 슬하에 장남 한남군(漢南君),
차남 수춘군(壽春君), 삼남 영풍군(永豊君)을 두었다.
나무들의 곡선이 너무 아름다워서 쳐다만 보아도 탄성이 나온다
나무를 가만히 쳐다보니 겨우살이가 많이 자라고 있다.
출처 : A Bird Of Paradise글쓴이 : 극락조 원글보기메모 :'살아있는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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