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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양시 용강서원(龍江書院)살아있는역사 2013. 3. 1. 16:21
용강서원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용강서원 홍살문
용강서원 안내문
용강서원 외삼문
외삼문 좌측에는 용강서원 중건 묘정비가 세워져 있다.
담장에 고드름이 길게 달렸다.
삼선생 약사 안내문
고려말의 충신 충정공 박서(朴犀)
삼한공신의 박기오의 10세손으로 신라경명왕의 12대손인 박서 장군의 자는
양종(洋宗), 호는 죽계(竹溪)이며 시호는 충정공(忠靖公)이다.
고종 때까지 서북면병마사 문하시랑평장사 벼슬을 역임하였다.
박서는 제1차 여. 몽전쟁때 귀주(龜州:지금의 평안북도 구성시 구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후 박문성(朴文成)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증조는 추밀원부사를 역임한 충질공(忠質公) 박정유(朴挺유)이며 조부는 지문하성사를
지낸 박육화(朴育和), 아버지는 호부상서를 역임한 박인석(朴仁碩)이다.
조선 태종 때의 충신 충민공 박순(朴淳)
신라시조박혁거세의 44세손이며 고려 고종조 박서장군의 현손이고 박문길의 아들인 박순은 음성박씨로
1388년(고려 우왕 14) 요동정벌 때 이성계 휘하에서 종군하고 이성계 명으로 회군 승인을 얻기 위해
우왕에게 갔던 박순은 조선의 개국과 함께 상장군이 된 인물로 함흥차사(咸興差使)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가 두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울분하여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함흥에 머무를 때
태종이 보낸 사신들 중 한명으로, 태조의 귀환을 요청하고 돌아오는 길에 용흥강에서 살해되었다.
태종은 그의 공을 기려 판중추부사에 증직하고 충신정려를 내렸으며, 숙종 때 충민(忠愍)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남편의 부음을 듣고 자결한 부인 장흥임씨에게는 묘지를 쓸 산을 하사하고 열녀문을 세우게 하였으며
부모에게 극진한 효행을 한 그의 아들 박호원과 손자인 박정규도 효자정려를 받았다.
숙종, 영조대의 문신인 경헌공(景獻公) 조상경(趙尙絅)
조상경(1681~1746)의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장(子章), 호는 학당(鶴塘),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풍안군(豊安君) 조흡(趙흡)이며 아버지는 도정(都正)을 지낸 조도보(趙道輔)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를 거쳐 1712년 29세로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설서(設書). 정언(正言). 지평(持平)을 지냈다.
1717년(숙종 43) 35세에 충청도에 암행어사로 나가 충주 등 충청도 지역의 민심을
지위 고하에 구애됨이 없이 공평무사하게 파악하고 조정에 보고하여 상벌을 엄히 하였다.
1721년(경종 1) 대사간. 승지. 이조참의로 승진하였으나 1722년(경종 2) 신임사화
(辛壬士禍:신축년(辛丑年)과 임인년(壬寅年)에 일어났으므로 신임사화라 함)로
유배되었다가 1725년(영조 1) 풀려나 다음해 함경도관찰사로 보임되었다.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탄핵되었다가 1729년 한성부좌윤. 대사헌. 경기관찰사. 이조참판을
역임하고 1731년(영조 7) 동지부사로 임명되어 청나라 사신으로 가서 명사조선열전(明史朝鮮列傳)을 가지고 왔다.
1934년(영조 12) 한성부판윤을 거쳐 병조판서에 이르러 군관의 치사 문제로 다시 파직되었다.
1736년(영조 12) 이조판서, 수어사(守禦使), 병조판서 겸 판의금부사, 판돈녕부사, 한성부판윤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서원은 본래 함경도 용릉강변에 있던 것인데 남북이 분단됨에 서원에 제향을 할 수 없게 되자
안타깝게 생각한 박씨문중과 당시 고양군 유림에서 재건을 발의하고 모금하여
군과 도의 도움을 지원을 받아 이곳에 다시 짓게 되었다고 한다.
황룡산 자락 감내마을에 위치한 용강서원은 홍살문, 묘정비, 삼문, 사당, 고직사 등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지금의 건축물은 1970년대에 중건되었으며 그 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이곳에 서원을 세우게 된 이유는 박순의 부인 장흥임씨에게 묘지를 쓸 산을 하사한 곳이 황룡산 이곳이라고 한다.
용강서원 사당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고려말의 충신 충정공 박서(朴犀), 조선 태종 때의 충신 충민공 박순(朴淳),
숙종, 영조대의 문신인 경헌공 조상경(趙尙絅)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고 있다.
제향일은 봄에 음력 3월 16일, 가을에는 9월 16일에 두번에 걸쳐 고양시 유림이 지내고 있다.
고직사
용강서원을 나서면서 바라본 마을과 앞산의 모습
용강서원 뒷쪽의 모습이다
왼쪽으로 황룡산은 0.6km, 오른쪽으로 상감천마을은
0.2km라고 쓰여진 이정표가 보인다.
용강서원에 갔을 때는 날이 어두워지기 직전이었다.
마음도 조급하고 날씨도 무척이나 추워서 가뜩이나 몸도 웅크리게 했는데
서원 입구에 있는 집에 개 두마리가 얼마나 짖어대는지 시끄럽기도 하고
대문도 잠겨 있어서 담밖을 빙빙 돌면서 사진을 찍느라 무척이나 힘들었다.
출처 : A Bird Of Paradise글쓴이 : 극락조 원글보기메모 :'살아있는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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