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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전라도 城] 장흥 만리성(萬里城)
    살아있는역사 2012. 10. 9. 10:18

    전라도 城(68)=장흥 만리성(萬里城)

    입력시간 : 2004. 06.16. 00:00

     


    ▲ =젊은병사 함성 묻은 옛 성엔 녹음만 푸르러

    ▲ =장흥 대덕읍~강진 대구 20km 잇는 전남지역‘最長’

    ▲ =1046년‘東憲錄’에 첫기록…사용 목적 놓고 분분

    ▲ =해안~육지 연결이 특이…城연구 귀중한 자료 제공



    ‘전라도 땅 장흥에도 만리성(?)이 있었다.’

    만리성(萬里城)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장흥군 대덕읍 진목리를 향해 내달렸다. 광주를 출발, 장흥읍을 지나 강진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차창 밖으로 부서지는 따가운 여름 땡볕에 녹음은 더욱 푸르게 빛났다. 듬성 듬성 피어있는 아카시아꽃 향기가 밀려와 코 끝을 자극했다.

    장흥 대덕읍 진목리 뒷산 관찰봉 기슭을 감고돌아 강진군 대구면 구수리까지 총 연장 20km를 잇고 있는 만리성은 전남 지역에 산재해 있는 성(城) 가운데 가장 길다. 이 때문에 성(城) 이름도 ‘만리성(萬里城)’이라 칭했다. 장흥 사람들은 또 다른 이름으로 ‘고장성(古長城)’이라고 부른다.



    # 城의 규모 및 실태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장흥 대덕에서 강진 대구면 사이를 연결하는 높이 2∼4m, 폭 1∼2m, 길이 20여km로 확인되고 있다. 이 거리는 장흥군과 강진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경계가 되는 관찰봉을 기준으로 하여 관찰봉에서 기잿재까지 968m의 체성이 장흥군 구간이다. 강진군 구간은 관찰봉의 서쪽으로 관찰봉의 중턱을 가로지르는 1천242m의 체성이 보이고 있다.

    현재 체성의 형태가 잘 유지되고 있는 구간은 장흥군 대덕읍 기잿재 부근이다.

    성벽은 35×20cm 정도의 자연석과 잡석을 이용해 협축법에 의해 결구 축성하였는데, 그 규모는 높이 2m30, 윗폭 2m, 아래폭 2m70 정도이다. 또한 강진군과 경계 지점인 분토리 ‘가는골’에도 300m 가량의 비교적 양호한 석축이 남아있다.

    일부 학설과 간단히 소개된 고문헌 등에 나타난 만리성은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침입한 왜구를 막기위해 쌓은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높은 산에는 성벽이 그대로 남았으나 낮은 곳은 허물어져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이 성(城)은 성벽의 축조 방향이 해안이 아닌 내륙을 향하고 있는 특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구전(口傳)에 따르면 탐라에서 실려온 말(馬)을 방목하기 위해 쌓았다고 하나 설득력이 없어보인다. 단순히 방목장으로 쓰기 위해 목책도 아닌 석성(石城)을 힘들여 쌓을 이유도 없을 뿐 만 아니라, 성터가 너무 넓고 성곽이 험난한 산악 지형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이 성은 왜구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여말 선초에 쌓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 기록에 나타난 城

    만리성에 관련된 기록과 지명 유래에 대한 기록은 장흥 보다 강진군 자료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일제 때의 조사 기록인 ‘조선고적보물 조사자료’의 강진군 용운리성지조(龍雲里城址條)에는 다음과 같이 언급돼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성명(城名)은 연해장성(만리성)이라는 하는데 성벽이 대체로 완전하다. 연해장성은 옛날 석성으로 진도에서 시작하여 강진 대구면 해변, 장흥 대흥면(현 대덕읍)을 거쳐 바다 건너 흥해(興海)의 연해제산에 이르고 경상도 연해까지 이어진다.(東憲錄, 고려 문종 원년, 1046). 동해로 부터 해남(남해안)까지 연해에 성보(城堡)를 쌓아서 준동하는 해적을 방비 하였다(고려사)”고 씌여있다.

    또 구수리성지조(九修里城地條)에는 “성(城)은 강진읍 남방 약 6리의 해안에 있다. 이 성(城)은 강진군 대구면 구곡리에서 장흥군 대흥면 가학리까지 연장 약 4리 연해장성의 서단(西端)이다”고 적고있다.

    특히 ‘고려사’를 깊이 살펴보면, “문종 즉위년(1046)에 병부낭증 김 경을 파견하여 동해로부터 남해안에 이르는 해변에 성보를 쌓아서 해적을 방비하였다”고 기록돼 어렴풋이나마 당시의 현상을 잠작케 해준다.

    그러나 해적을 방어하고 농장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축성되었다면, 성이 해안을 대하고 축성됨이 마땅하나, 현지 취재 결과 성축은 해안이 아닌 내지(內地)를 향해 축조되어 고려사의 기록 내용에 의문을 품게 한다.

    이밖에도 ‘문화유적총람’(전라남도 刊, 1986)에는 “14217년(태종 17) 축성됐다”는 내용과 “장흥읍 대덕읍 외령진을 기점으로 강진군 구곡리 남호 마을까지 성축이 연결됐다”고 적고있다.


    사진/ 오재만 문화유산사진연구소장


    글/ 김선기 기자 kimsg@kjtimes.co.kr



    전라도 城(68)=장흥 만리성(萬里城)

    입력시간 : 2004. 06.16. 00:00


    전라도 城(68)=장흥 만리성(萬里城)

    장흥 대덕읍 진목리 뒷산 관찰봉 기슭을 감고돌아 강진군 대구면 구수리까지 총 연장 20km를 잇고 있는 만리성은 전남 지역에 산재해 있는 성(城) 가운데 가장 길다. 특히 이 성(城)은 해안이 아닌 육지를 향해 축조돼 한국의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 : 그루터기-jtyjohn
    글쓴이 : jtyjoh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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