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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진짜 청백리는?> 한마리 소일지라도 - 성안공 상진 선생의 묘소를 찾아
    살아있는역사 2016. 8. 10. 15:04

    조선시대 청백리중 한분인 성안공 상진(尙震, 1493∼1564) 선생의 묘역을 찾아본다.

      

     

    상진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이 목천(木川)이며 호는 송현(松峴), 범허재(泛虛齋), 향일당(嚮日堂)이다.
    1519년(중종 1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이 되고 예조좌랑, 대사간,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등을 거쳤다.
    1544년 중종이 죽자 춘추관지사(春秋館知事)로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참여하기도 했다.
    1549년(명종4년)에 우의정에 오른 이래 15년 동안 3정승(政丞)을 모두 거치며 재상으로 왕을 보좌, 명상으로 조야의 신망이 두터웠으며 정승으로서의 업적은 황희와 허조의 다음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1564년(명종19년) 세상을 떠나자 명종은 성안(成安)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상진 선생의 묘는 의외로 찾기 쉬운 곳에 있음에도 잘 알려지질 않았다.
    다름아닌 서울 서초동 상문고등학교 내에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정문을 지나 진입로 옆에 나즈막한 언덕과 소나무 숲이 눈에 들어온다.
    양 옆으로는 학교와 주차장, 상가가 펼쳐지지만 이곳만큼은 별천지다.

     

     

     

    징검다리를 건너듯 보도를 따라 올라가면 잘 단장된 묘역과 신도비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 신도비는 198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0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옛 양반가 묘역이 그렇듯 여러 기의 봉분이 층을 이루고 있는데 가장 위쪽에 있는 것이 상진공과 부인의 묘다.
    선생의 청렴한 삶을 나타내듯 봉분도 그저 소박하기만 하다.
    특히 오른편의 문인상은 생전 성안공 선생의 인자한 성품을 옮겨놓은 듯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상진 선생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선생이 길을 가던 중 두마리의 소를 몰아 밭을 갈던 노인을 보았다.
    노인에게 "두마리 소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좋은 소인가?" 물었는데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귀머거리인가보다 하고 공이 갈 길을 가는데 노인이 황급히 따라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전 물으신 것에 즉시 대답을 못드려 죄송합니다. 그 자리에서 좋고 못한 것을 말하면 못하다고 한 소가 언짢아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대답을 못해드렸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저 젊은 소가 더 좋은 소입니다'

    이에 공은 크게 깨닫고 노인에게 정중하게 인사드렸다고 한다.
    "노인장은 숨어 사는 군자이십니다. 한마리 미물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데 사람을 대하여서는 오죽하겠습니까. 노인의 말이 없었더라면 저는 가볍고 얄팍한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후로 공은 절대 남의 단점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남의 과실을 듣더라도 그 이유부터 찾아 용서해주려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당대 사람들로부터 어질고 너그러운 사람으로 큰 칭송을 받았다.

     

    전래동화에서 익히 들었던 이야기인데 바로 상진 선생의 이야기임을 알게 되니 더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상진 선생은 재물을 탐하지 않는 청렴한 정신으로도 유명하다.
    본래 집안에 재산이 많았으나 만년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돈을 꾸어준 것을 기록한 장부를 불살라 버리고 '나의 후손 중에 잘 될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정승 자리에 올라서도 생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 창고는 다 허물어져서 언제나 텅 비어 있었다.
    노비가 수리할 것을 청하자 선생은 웃으며 "창고를 고쳐 완전하게 한들 무엇을 넣어 채우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번은 길을 가던 중 금으로 된 술잔을 줍게 되자 집으로 가지고 와서 그 주인을 찾는 방을 붙였다고 한다.
    며칠 후 한 사람이 찾아와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라고 하며 사실은 집안 혼사에 쓰기 위해 궁중의 금잔을 몰래 갖다가 쓰고 다시 돌려 놓으려는 중에 잃어버린 것이라는 고백을 한다.
    본인도 죽을 죄지만 알려지면 훨씬 많은 사람이 희생될 일임이 자명했다.
    이에 상진 선생은 아무 말 없이 금잔을 주어 돌려보냈다.
    그 사람이 훗날 값진 보물을 가지고 와 보답하려고 했으나 받지 않았고 다시 말 한필을 가져와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을 입밖에 내어 일체 다른 사람에게도 말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상진 선생의 일대기를 보노라면 세상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권좌에 올라 있음에도 재물을 탐하지 않고 미물일지라도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오늘날 공직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새삼 떠오르게 된다.

     

     

     

     

     

     

     

     

     

     

     

    출처 : 국민권익위원회
    글쓴이 : 국민권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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