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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남평문씨,장흥 장평 황룡농주형 명당
    살아있는역사 2014. 6. 18. 17:48

     南平文氏 장흥 장평 황룡농주형 명당
    효ㆍ풍수ㆍ자연이 조화된 신비한 묘


    남평 문씨 문온 공의 묘 위에 영죽이 있음.
    남평 문씨는 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하고 관향을 나주 남평으로 한 단본이다. 시조 다성은 남평에서 출생해 삼중대광벽상공신(고려)으로 남평백(伯)을 지냈다. 그는 군주가 키웠는데 글을 잘하고 총명하여 성을 '文'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남평 문씨 상계세계도(上系世系圖)를 보면 문익점(文益漸)공의 후손들이 대종을 이룬다. 문익점공은 고려 말 우문관제학(右文館提學)을 지낸 학자로 목화씨 보급으로 유명하다. 그는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과거에 급제했다. 그들 모두의 가세가 번창함에 따라 이들을 중심으로 분파가 된다. 전남지방의 남평 문씨도 거의가 문익점공의 후예들이다. 장흥 입향조 문온공도 문익점공의 5대 손이며, 영해부사(寧海府使)를 지냈고 장흥군 장평에 터를 잡고 살았다.

    장평면 임리 백초동의 낮은 산자락에는 문온공의 유택이 있다. 묘 위에는 한 다발의 대나무가 지난 500년 동안 한 발짝도 떼지 않고 그 자리를 꼿꼿이 지키고 있다. 세록(世錄 : 宗中行蹟記錄物)에는 '간혹 큰 줄기가 생겨나면 자손 중 대과에 급제하니 이 대나무를 영죽(靈竹)이라 한다'고 기록됐다.

    이 묘의 용세를 보면 무등산에서 제암산까지 뻗은 줄기용맥(幹龍)에서 분맥한 일지맥(一枝脈:枝龍)이 거침없이 행용하며 사나운 기운을 털어버린 주룡이 수려한 벽옥산을 맺으니 본 혈의 소조산이다. 다시 완만한 기복과 굴곡을 하며 낮게 내려와 단아한 현무봉(영모재 뒷산)을 맺고 청용과 백호를 개장한다. 그 중 출맥인 입수룡이 박환을 거듭하다가 결인속기(結咽束氣)를 하고 용진처(龍盡處)에 생기를 모아 두툼한 혈을 맺는다.

    이 혈장에서 전후좌우를 살피다보니 문득 영광 법성면 신장리에 있는 청주 한씨 한광윤의 묘가 떠오른다. 그 형국이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 청주 한씨 발복지로 유명한 그 묘의 혈은 도선국사가 그의 비결에서 '용사취회형(龍蛇聚會形)'이라 했다. 즉 용들이 모여 회합하는 형국을 말한다. 이 곳 혈은 황룡농주형(黃龍弄珠形)이다. 즉,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놀고있는 형국을 말한다.

    두 묘의 입수룡처럼 완만한 기복굴곡과 위이를 한 형태가 마치 살아서 꿈틀꿈틀 움직이는 용과 같다고 해서 '龍'자를 붙인 것이다. 다만 한씨 묘는 양쪽 좌우의 산들이 다정하게 마주하고 있어 용들의 회합을 연상했고, 문씨 묘는 청룡과 백호의 끝자락이 그 옆에 있는 작고 둥근 동산을 만지는 듯해서 용이 두 앞발로 여의주를 가지고 놀고 있다고 본 것이다.

    다시 주위를 살피니 가까운 산들은 단정하고 정답게 혈을 감싸주고, 손님으로 여기는 먼 산(朝山)들은 문장가가 나온다는 문필봉, 귀인이 난다는 귀인봉, 속발부귀한다는 천마사 등 길사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물이 나가는 길목을 가로막고 나란히 서있는 두 개의 작은 동산은 수구한문(水口?門)이라 하며 매우 귀하게 여긴다.이 곳으로 흐르는 명공수(明拱水:눈에 보이는 물)가 없는 것이 매우 아쉽다. 원래 물은 재물을 관장한다(水管財). 명당이 좋은 물을 얻어야 큰 부자가 난다. 만약 이 명당이 좋은 물을 얻었다면 그 품격이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묘의 방위는 서남쪽 향(艮坐坤向 )이고, 물길도 서남쪽 방위(坤破)로 같은 방위가 된다. 절향절류(絶向絶流) 향이 되어 대부대귀하고 자손이 크게 번창한다는 향이다. 그러나 잘못 쓰면 매우 흉한 향이 된다. 풍수 전문가가 아니면 쓰기 어려운 향인데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입향한 것을 보니 문씨 가문의 풍수관을 대충 짐작할 수 있겠다.

    명당에 묘를 썼다고 발복이 되는 것이 아니다. 형국에 따라 적법한 향을 써야 발복이 된다. 향법은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요소가 된다.풍수의 원전인 금낭경(錦囊經:郭璞)에서는 '호리지차(毫釐之差)라도 화복천리(禍福千里)'라 했다. 즉, 털끝만한 차이라도 화와 복은 천리의 차가 생긴다는 뜻이다. 묘의 방위는 그만큼 중요하다.

    남평 문씨는 이 곳 외에도 많은 명당 길지들을 갖고 있다. 그 선산들은 항상 정성스럽게 가꿔지고 있고, 옛날 양반집 가풍을 연상시키는 기품이 배어 있다. 문씨들이 명문이 되고 인정흥왕(人丁興旺)하고 있음은 그들의 위선(爲先)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남평 문씨들은 대를 끊지 않고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조선시대는 문과(36명)와 무과(16명)의 과거 급제자가 많았고, 근대에와서도 관계, 정계, 종교계를 중심으로 큰 인물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신 문장호(문오공 15대손)씨에게 참고할 말씀을 부탁했더니 "씨족 관념이 사라져서 사당이나 선영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출처 : 구름에 달가듯 가는 최삿갓
    글쓴이 : 최만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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