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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삿갓 시인의 마지막글펌 글 2010. 9. 5. 17:26
김삿갓 시인의 마지막글
날짐승도 길짐승도 다 제 집이 있건만
나는 한평생 홀로 상심(傷心)하며 살아왔노라.
짚신에 대지팡이 끌고 천리길 떠돌며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이 못되어
해마다 해가 저물면 슬픈 회포만 가슴에 남았노라.
어려서는 이른바 복(福)된 집에서 태어나
한강 북녘 이름있는 고향에서 자라났노라.
조상은 구슬 갓끈 늘인 부귀한 사람들이었고
호화로운 가문은 장안에서도 명망이 높았다.
이웃 사람들도 귀공자 태어났다 축하해 주며
장차 이름을 떨치리라 기대했었다.
어린 머리칼 차츰 자라면서 운명이 기박해져
화를 입은 집안은 상전(桑田)이 벽해(碧海)로 변했다.
의지할 친척없고 인심도 각박한데
부모마저 돌아가셔 집안은 망했도다.
새벽 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 애달팠노라.
마음은 고향그리는 떠돌이 여호같고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 같은 나로다.
남쪽 지방은 자고로 과객이 많은 곳
부평초처럼 떠돌아 다니기 몇몇 해던고.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요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그런 중에도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수록 아득하네.
떠돌며 구걸한 집 수없이 많았으나
풍월 읊은 행장(行裝)은 언제나 비었도다.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다니며
후하고 박한 가풍(家風) 모조리 맛보았노라.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만 받다 보니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기도 어려워
얼마나 긴 세월 길가에서 헤매야 하는가.
난고 김삿갓 (1807~1863),경기도 양주 회천 회암에서 出生, 순조11년(1811)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때 祖父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있으면서 홍경래에게 항복 ,역적으로 몰려
폐족 처분을 받아 가족이 영월로 옮겨와 은둔 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도 母親은 자식에게 祖父의 사연을 감추고 글을 가르쳤으며,
20世 되던해 영월 동헌에서 백일장에 응시하여 祖父를 비판하는 글로 장원이 되었다.
그후 祖父라는 사실을 알고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22世에 집을 나서 방랑생활을
하면서 서민들의 애환을 詩로 읊어 서민문학의 큰 틀을 마련하였다.
1863년 전남 화순 동복에서 작고하여 그 곳에 墓를 썼으며 3년후 둘째 아들인 익균이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
출처 : 다정ⓔ글쓴이 : 메아리 원글보기메모 :'펌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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