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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좋은 시란 무엇인가 [2]
    펌 글 2009. 9. 26. 17:43

    좋은 시란 무엇인가

     


    2. 단단한 구조



    낭만주의 이후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일종의 유기체로 파악하고 있다. 시 역시 살아 있는 구조를 갖는 생명의 조직이라는 뜻이다. 시에서 생명의 조직을 만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깨어 있는 언어이다.

    깨어 있는 언어가 옳고 바르게 사용되지 못한 시는 생명을 갖지 못한다. 언어들이 활기 있게 운동할 때 시는 비로소 생명을 갖는다. 생명을 갖는 시는 리듬과 가락이 팽팽한 결을 만들며 활동하기 마련이다. 리듬과 가락이 만드는 運氣를 꺾고, 젖히고, 밀고, 당기고, 끊고, 맺는 가운데 씌어지는 시가 생명을 갖는다.

    시의 조직은 리듬과 가락이 활발하게 살아 있을 때 완성된다. 운동하는 리듬과 가락을 꺾고, 젖히고, 밀고, 당기고, 끊고 맺는 가운데 시의 조직은 완성된다. 시의 조직은 그 자질들이 치열한 기세로 운동을 할 때 신선하고 상쾌한 감동을 만든다. 이런 시가 구조적으로 완미한 형상에 이르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구조적으로 완미하게 마무리가 되어 있는 시는 장작개비로 뒤통수를 맞는 듯한 충격을 준다. 이런 시는 후딱 한번 읽었을 때부터 다리가 후둘후둘 떨리도록 감동을 체험케 한다. 한꺼번에 심장이 멈추는 듯한 충격을 주는 것이 이런 시이다. 몸 전체로 오르가슴을 느끼게 하는 시, 내가 '좋아하는 시'는 바로 이런 시이다. 단숨에 읽혀 가슴을 치도록 하면서도 두고두고 다시 읽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시를 나는 좋아하는 셈이다. 이런 시를 읽으면 한동안 가슴이 둥그렇게 부풀어오르다가 팍, 하고 터지는 듯한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시를 읽기란 쉽지 않다. 너무 많이 시를 읽어 신경이 예민해진 탓도 없지 않으리라.

    문제는 이런 시에 절대적인 가치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형식적으로 완미한 시, 구조적으로 잘 통일되어 있는 시, 섬세하게 대칭적 구조를 갖는 시가 이런 시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형식적 특징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매 편의 시는 매 편의 자기 형식을 갖기 마련이다. 시 쓰기가 어려운 것도 매 편의 시가 갖는 이런 형식적 특징에서 발생한다. 좋은 시는 그 자체로 정밀하게 다듬어진 대리석 조각 같은, 예쁘게 구어진 항아리 같은 형식미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단지 형식미만으로는 장작개비로 뒤통수를 맞고 철썩 주저앉는 것과 같은 감동을 체험하지 못한다.

    정말 좋은 시는 지속적으로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파격, 어떤 흠집을 지니고 있다. 흠집이 애간장을 녹이는 매력으로 튀어 오르는 시를 나는 좋아한다. 이를 가리켜 흔히 말하는 '청자 연적'의 파격이라고 불러도 좋다. 미완성되어 있으면서도 완성되어 있는 시, 부족하면서도 넘치는 시, 비어 있으면서도 가득 차 있는 시가 그런 시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좋은 시가 다 압축과 응축의 형식을 갖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 의도하는 초점을 향해 수렴되고 집합되는 시만이 좋은 시는 아니다. 특별한 초점이 없이 부연되고 나열되는 형식을 갖고 있더라도 얼마든지 좋은 시가 될 수 있다. 말들을 통일시키는 시만이 아니라 말들을 풀어헤치는 시도 살을 저미는 것 같은 감동을 주는 경우가 적잖다. 統辭體의 시만이 아니라 解辭體의 시도 충분히 좋은 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시는 열린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무작정 열려 있지만은 않다. 열려 있으면서도 닫혀 있는 것이 이런 시이다. 초점을 향해 수렴되고 집합되는 압축과 응축의 시들의 경우에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정작의 압축과 응축의 시는 폐쇄되어 있으면서도 개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이 좋은 시가 갖고 있는 형식적 특징이다.


    출처 : 한울문학의 쉼터
    글쓴이 : 우상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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